어제 밤에 보고 들어왔다. 원작 소설이 유명하다는데 이 영화 광고를 보기 전에는 그런 소설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류의 대중 소설을 많이 보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유명한 작품인가보다. 수잔 콜린스라는 작가가 쓴 소설을 4부작 짜리 영화로 만든다고 그러던데 처음에는 이 영화를 볼 생각도 하질 않았다. 미국에서 워낙 선풍적인 인기라고 광고를 해대는데다가 무엇보다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이어서 볼 생각이 났다. <윈터스 본>이라는 저예산 영화에서 그녀는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는 <헝거 게임>과도 꽤 흡사하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가정을 돌보지 않는 상황에서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 가장이라는 점이 그렇다.
원작을 전혀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 봐도 이 영화는 꽤 재미있었다. 같이 본 사람은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지루한 감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배틀로얄>이나 게임을 영화로 만든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같은 스타일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가 이 영화가 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어 놀라면서 봤기에 지루하지 않았다. 서바이벌 게임을 영화로 옮긴 것은 이 작품 말고도 꽤 많다. 하지만 우선 성인이 아니라 소년 소녀가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한다는 것이 독특하고 미래도 아닌 것이 현대도 아닌 것이 애매한 시대를 배경으로 독재 정권과 쇼 비지니스의 세계를 결합해 보여준다는 것도 재미있다. <배틀로얄>같은 작품이 극히 일본색을 드러내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면 <헝거 게임>은 극히 미국적이고 헐리웃스러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우선 여주인공 캣니스가 동생 대신에 24명의 남녀가 서로를 죽일 때까지 계속하는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 주인공의 행동에 당위성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같이 참여하게 된 남자아이가 하필이면 그녀를 좋아하는 소년이라는 것도 극에 상당한 긴장감을 준다. 이것은 서바이벌 쇼에 양념처럼 덧붙여지는 '러브 라인'을 연상시키는데 영화는 역으로 두 사람의 러브 라인을 쇼의 활력을 위해 이용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관객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서바이벌 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단지 계급 사회의 생존을 담보로 한 서바이벌 쇼라는 점만이 다르다는 것 뿐.
나는 특히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독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런 프로그램들을 즐겨 보는데 아메리칸 아이돌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 런웨이 시리즈, 도전 슈퍼모델 시리즈 등 온스타일에서 해주는 왠만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일하게 안 본 것이 있다면 제목 그대로 서바이벌 쇼임을 표방하는 <서바이벌> 정도? 상대와의 싸움만이 문제가 아니라 자연 현상과도 싸워야 하고 이기려면 서로를 이용하거나 협력해야 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할 뿐만 아니라 스폰서들의 눈에도 들어야만 한다는 서바이벌 쇼의 법칙이 헝거 게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쇼 비지니스 세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15세 관람가임을 생각하면 영화의 메시지는 잔인해도 영화의 묘사는 <배틀로얄>과 같은 영화처럼 잔인하지 않다. 포스터만 보면 컴퓨터 그래픽이 작렬하는 판타지 영화같은데 막상 보면 숲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많은, 사실적인 액션이 주가 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제니퍼 로렌스는 강인하면서도 강해지기 위해 남성성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으로서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윈터스 본>에서도 그랬듯 그녀에게는 뭔가 슬퍼 보이는, 하지만 그 슬픔 속에 머물지 않는 연약함과 강인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하층민으로 설정된 캐릭터임에도 그녀에게는 뭔가 여왕같은 위엄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주려고 하는, 생존 경쟁 속에서도 인간의 자질을 잃지 않으려는 한 소녀가 보여줄 수 있는 자존감이었을 것이다. 제니퍼 로렌스는 영화계의 '헝거 게임'에서도 분명히 살아남을 것임을 느낄 수 있다.
* 래니 크래비츠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다음주에 내한공연 보러 가는데ㅎㅎ 신기하다.
제니퍼 로렌스



